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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시작으로 해서 영화, 드라마 등 다방면에서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어린 시절 무척이나 가난했던 듯 하다. 주변 환경이 학교에 가고 있으면 골목에서 할머니들이 쥐를 잡아서 구워 먹는 모습을 가끔 보았다고 한다. 학창 시절 공부에 관심이 없었던 데다 친척 형이 심하게 노는 형이라 9살에 담배를 배웠다가 끊었다. 중학교 1학년 시절에는 175cm로 큰 키였다. 오전반/오후반이 나뉘어 있어서 운동장에 노는 애들이 많았고 한 반에 학생이 많던 시절이라 수업 시간에 교실에도 있지 않고 운동장에 있던 애들하고 놀았다고 한다. 당시는 적잖은 선생님들이 말 안 듣는 애들은 그냥 냅둬 버리고 가던 시절이라 그랬던 듯 하다. 학창 시절 교회의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자신도 목사가 되어 섬으로 가서 복음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연세대 신학과에 진학했다.
1984년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입학 후, 운동권에 뛰어들어 강경 NL이 되었다. 1988년 광주직할시 미국 문화원에 시한폭탄을 설치했는데, 천만다행히도 제조 과정에서 불량이 발생했기에 터지지 않았다. 자수하여 총포-도검-화약류 단속법 위반으로 8개월 간 교도소에서 복역했다. 당시 고려대생 박시백, 중앙대생 박철민과 함께 테러를 저질렀다.
전두환 군사 정권이 광주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했음에도 불구하고, 미제가 방관하는 것에 격분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폭탄이 터지고 나면, 자신도 산화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현재는 그때 폭탄이 터지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며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고, 극단적 행동이었으며, 반성하고 있다"고 여러 번 밝혔다.
그는 운동권 동기인 우상호와 함께 미국 입국 거부자가 되면서, 약 20년이 넘은 지금도 '미국에 갈 수 없는 몸'이라고 언급했지만 그렇지 않다. 2016년에 괌을 방문했는데, 괌은 미국의 해외 영토로 미국 본토와 동일한 입국 절차를 거치므로, 미국 입국 거부자는 괌에도 갈 수 없다. 그가 괌에 문제 없이 방문했다는 것은 미국 본토 방문에도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2016년 4.13 총선 때 우현과 함께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의 지지 유세를 했다. 유세 영상 셋은 대학생 때 민주화 운동을 같이 할 때부터 지금까지 매우 절친한 선후배 사이인데, 심지어 본인이 가난했던 연극배우 시절에는 우현과 함께 우상호의 신혼집에 들어가서 빈 방에서 2년 가까이 같이 살기도 했을 정도였다. 우상호 의원의 결혼 당시 보통 절친한 친구가 맡는 함진아비 중 하나로, 우 의원의 발바닥을 때리는 역할을 한 사진이 공개되기도 했다.